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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게는 열 번, 적게는 세 번을 나와 함께 이사를 다닌 녀석들은 이젠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는 시간이 그다지 오래걸리지 않는다. 1톤 용달로 가볍게 이동할 수 있는, 많이 단순해진 나의 살림이지만 그래도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프고 피곤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눈 앞에 숲이 펼쳐지는 커다란 창과 작은 창을 가지게 된 녀석들이 부지런히 앞과 뒤를 왔다갔다 하기 바쁘다. 피곤해서 잠을 청했지만 잠이 없는 고래의 부산한 소리에 잠을 깼다. 이제 해가 뜨려나 싶어 몸을 일으켜 숲을 바라보는 소파에 웅크리고 누웠더니 이제 겨우 자정을 넘겼을 뿐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검은 숲을 본다. 눈이 쌓이면 무척 예쁘겠지. 길고 길었던 블록 상태를 이틀 전 설치한 스크리브너가 깨주었다. 왜 진작 이걸로 작업하지 않았을까. 쉽게 의욕 상실에 빠지게 만들었던 답답함이 한 방에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이번 겨울은 다시 돌아온 이 강과 숲 사이에서 그토록 바라던 나와 이야기만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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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더 잘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딱따구리, 고라니, 족제비. 올 겨울도 잘 지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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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서서 숨 한 번 쉬고 다시 걷듯 삶을 살 수 있다면.

아침 6시에 눈을 떠서 계속 목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목욕이라는 행위는 내게 명상이나 진통제와 비슷하다.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순간 머릿속을 맴도는 수많은 단어들을 잠재우고 비로소 잠시나마 편안해짐을 느끼는 것이다. 국내에는 마음에 드는 온천이 너무나 없었는데 아침에 일어나기 전 휴대폰으로 찾아 본 한 온천이 날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언젠가 2년 전이었나 주왕산을 다녀오다가 본 청송의 대명리조트. 그때는 오픈 준비 중이었는데 이젠 오픈한 모양이었고 그곳에 온천 스파가 있는데 시끄러운 풀장 같은 다른 스파와 다르게 깨끗하고 조용한 일본 온천에 그나마 가까워 보였다. 청송까지 차를 몰고 두시간 안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샘온천은 기대한만큼은 아니었지만 다른 실망스러운 국내 온천들보다는 그나마 나은 곳이었다. 노천탕에 앉아서 찬바람이 머리를 스치는 걸 느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은 대체 몇 년을, 아니 몇십년을 해야 그만 할 수 있는걸까. 바다에 가고 싶었다. 바다를 본다기 보다 예전부터 구경하고 싶었던 서핑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파도 위에 사람들이 보드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고 멀리 보이는 그들은 무척 평화로웠다. 그것은 바라보면 편안해지는 장난감 같았다.

책상에 앉는 것이 힘든 나날이 너무 길게 이어졌다. 많이 비웠는데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어쩌면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버리기 전에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지금 내게 남아있는 건 한 톨일까 한 줌일까. 

머리 위에서 까마귀가 울었다. 

반듯한 테라조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이 한 방향으로 굴러갔다.

낙엽 구르는 소리는 왜 이다지 쓸쓸한걸까.

아주 먼 곳에 갇혀 있는거라면, 어떤 욕망도 유혹도 소용없는 일이라면

난 더 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수갑을 손에 채운지 너무 오래됐다.

열쇠를 찾아야 한다.

보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불을 켜고 잠든 지 며칠 되었다.

하지만 책은 펼쳐진 채 머리맡에 있을 뿐 길고 얕은 잠을 자는 나날이다.

다섯시. 누운 채 눈을 뜨고 휴대폰을 손에 들고 엄지 손가락으로 몇 개의 앱을 

펼쳐 보다가 어떤 분의 포스팅을 보았다. 

아마도 최근 제주에 내려가신 건지 제주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있었다.

문득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주에 살 때 매일 같이 듣던 바람소리.

내가 살던 때는 지금처럼 제주가 인기있기 전이어서 일 년 정도 살 촌집 정도는 공짜로도 구할 수 있었다. 

그때의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이 순식간에 방안에 구름처럼 밀려들어왔다.

나는 왜 섬으로 갔고 왜 섬에서 나왔을까.

알고 있지만 모르겠는 것들이 있다. 기억하지만 추억하지 않는 것처럼.

왼손으로 잡은 휴대폰이 등대처럼 빛났다.

난 일어나서 지금의 감정을 써놓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침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나 때문에 놀랐는지 침실 문 앞에서 자던 개가 깜짝 놀라 일어났고 고양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마치 하나의 작은 밤들 인것처럼 자고 있다.

물을 끓이고 즐겨쓰는 커피잔을 꺼내 커피를 담고 냉장고를 열어 세 알 남은 딸기를 접시에 담아 작업실로 들어섰다. 새벽빛에 푸른 방이 12시간 연착된 기차를 기다리는 인도의 어느 플랫폼 같았다.

끄지 않은 컴퓨터에는 요즘 작업하고 있는 책의 원고들이 떠 있는데, 이렇게 진도가 느리다면 이걸 과연 요즘 작업하고 있다고 하는게 맞는지 그저 일상의 손버릇 뿐이라고 얘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듣는 새벽의 키보드 소리가 좋다. 매일 아침 칼럼 한 편 씩을 써내던 오래전 나의 에너지는 다 어디로 갔을까.

운좋게 상을 받고 등단을 하고 시집을 내고 산문집을 내고 소설을 쓰고 연재를 하고 영화를 만들고, 그렇게 글만 쓰며 살아가던 나날이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음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문학도, 역시 둘 만의 동거기간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언제나 그 파트너들은 생활비에 도움을 주지 못하며 난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한 다른 방편을 늘 고안하고 실천해야만 했다.그것이 내 인생이다. 우리가 끝까지 함께 하기 위해 무언가 다른 것을 해야만 하는 삶.

여기까지 오는게 힘들고 지쳤는지 요즘의 난 기운이 많이 없어졌고 슬프게도 이젠 무엇을 하고 싶다 보다 무엇을 하면 왜 안되는지를 더 깨닫게 된 사람이 되었다.

제주에 살았을 때 난 지금보다 행복했었을까.

단절은 자신에게 충실하기 위해 유용한 단어다.

지리적인 고립도 단절을 실행하는 방편 중의 하나가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를 둘러 싼 관계와의 단절이고, 생활을 위해 필요한 모든 사회 시스템에서 가능한 최대로 오프그리드 하는 일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빈 공책과 펜 한자루만 있으면 다른 무엇도 필요없는 단순한 삶을 산다면 그것은 사실 가장 풍요로운 삶일텐데 우린 그 상태를 이루는게 그렇게도 어렵다.

생애 가장 슬펐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사랑한 사람들과의 이별이 이어졌다는 것만으로도 2017년 크리스마스는 충분히 쓸쓸하다.

티비 속에서 해가지는 바다를 보고 코발람이 생각났다.

오랜 인도 여행에 지친 나를 진정 쉬게 해주었던 코발람 비치.

그때 본 붉은 벨벳 같던 노을을 잊을 수가 없다.

다시 떠나야 할 때 인가.

머리 속에서 먼 곳, 멀고 먼 곳을 생각한다.

자꾸만 눈물을 닦는 비오는 크리스마스 이브.

이곳에 

눈이 내리고

눈이 쌓이고

보고싶다는 말이

둥실 떠올라


그곳에

눈이 내리고

눈이 쌓이고

보고싶다는 말이

가득 쌓이는


겨울

오랜만에 글을 쓰고 있는 밤이다. 오늘은 아침에도 낮에도 조금씩 글을 이어나갔다. 지난 밤에도 그 전 밤에도 글을 썼다. 프린터로 출력해서 읽고 다시 고쳐 쓰는 게 실은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다. 오래전, 아니 아주 오래전 지금처럼 글쓰기에 집중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잠깐 목이 매었다. 그때의 꿈과 그때의 열정과 그때의 고집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만큼 나는 늙었다. 허리가 아파서 오래 앉아있기 힘들고 걱정거리가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은 늘 미루게 된다. 

나를 위해 살 수 없던 날들이 너무나 길었다. 늙은이가 원고지를 우체통에 집어 넣듯 다시 시작하고 싶다. 

지난날을 후회하는지 자문하기 보다 남은 시간은 원하는 삶을 살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비가 온다. 돌아가시기 전 어머니가 내게 하신 말씀이 자꾸만 떠올라 슬프다. 

“이제 네 인생을 살아라.”

카페 유감

이어폰을 안 가지고 다닌지 꽤 되었다. 아마도 요즘은 운전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이동 간에도 차에서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으니 이어폰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내가 혹시 이어폰이 가방 안에 있나 간절하게 찾게 되는 순간이 가끔 발생할 때가 있다. 그건 어떤 음악을 너무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방어할 수 없는 소음을 차단하고 싶을 때다.

지금 나는 경기도 어느 국도 변에 있는 요즘 인기가 좋다는 커피집에 와있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 내가 알고 있던 이곳에 대한 정보는 온실 컨셉의 카페라는 것, 주말에 주차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이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근처에 들릴 일이 있어서 왔다가 한 번 들려보자 라는 마음으로 왔는데 결론부터 쓰자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다. 오기 전에 수차례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진을 본 나는 이곳을 방문하고 싶었는데 왜 막상 오니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그 이유는 중요한 요소들이 기대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건 간단하면서도 아주 근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맛.

난 이곳에 와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음식 메뉴는 없었고 몇가지 디저트 메뉴만 제공하고 있었다. 그런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곳은 커피집이고 요기를 할 만한게 없는게 이상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피는 정말 맛있어야 하지 않을까. 중국집에서는 짜장면이 맛있어야 하고, 설렁탕 집에서는 설렁탕이 맛있어야 하는게 기본이 듯이 커피집에서 제일 중요한 건 바로 커피라고 생각한다. 물론 커피 같은 기호 식품은 개인적인 취향이 작용하는 것이니 나의 입맛에 안 맞는다고 다른 사람도 맛이 없다고 생각할 거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게는 별로 맛이 없는 커피였다. 이집의 이름을 넣은 시그니처 커피를 마셨는데 향도, 맛도, 온도도, 양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배가 조금 고팠기 때문에 당근케이크를 같이 주문했다. 아, 요즘 당근케이크 맛있게 만드는 카페가 얼마나 많은가. 메뉴의 숫자가 적을 수록 개별 메뉴의 맛은 어느정도 수준급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먹은 당근케이크는 너무 평범한 맛이었다.


인테리어.

어쩌면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인테리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온실 컨셉의 카페이기 때문이다. 나는 큰 창고나 폐공장을 활용하여 만든 상업공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언젠가 온실카페를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나보다 먼저 그러한 곳을 만들었다는 이곳에 와보고 싶었다. 주차를 하고 건물 앞에 서서 바라보는 이곳은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들어가면 커다른 나무들이 나를 맞아주겠지 했으나 문을 밀고 들어간 나는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내 눈에는 에이치빔과 블럭으로 이루어진 골조와 장식들만 보일 뿐 나무나 꽃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걸어놓은 행잉 화분이 9개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이 무더운 여름에 손님을 받으려면 에어컨을 켜야하고 그러면 식물들을 온전히 실내에 있게 하기 힘들기 때문에 다 빼버린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나는 주인장의 고충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이 카페가 표방하고 있는 게 온실에서 마시는 커피 아니였나 하는 점이다. 내가 잘 못 알고 있는거라면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 정말 온실 카페가 이 곳의 컨셉이라면 가장 중요한 컨셉을 스스로 버린 셈이 되는게 아닐까. 물론 실외에는 정원과 나무들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커피를 마시는 테이블 옆에는 작은 화분 하나 없으니 내가 온실 카페에 와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지난 2월에 아이슬란드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가보고 싶었던 Floran이라는 비스트로가 있었는데 그곳은 직접 기른 유기농 작물로 만든 음식을 선보이는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가 얼마나 추운 나라인가. 그런 곳에서 온실에서 작물을 기른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어떻게 그런 방식의 운영이 가능할지 궁금했다. 하지만 우린 그곳에 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2월에는 운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비스트로는 아이슬란드의 그 긴 겨울 기간 동안 문을 닫는다. 스스로 만든 컨셉을 기후 환경을 극복하며 억지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난 그런 그들의 운영 철학이 인상적이었고 그곳에 가고 싶어서라도 다음에는 아이슬란드에 여름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곳도 조금만 더 고민하면 그들이 스스로 만든 처음 컨셉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에어컨 바람에도 강한 식물들로 실내 식물을 바꾼다든지,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도서관에는 책이 있어야 하듯이 온실에는 식물이 있어야 한다.

소리.

큰 공간의 사운드 디자인을 하는 건 사실 상당히 과학적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콘서트홀의 디자인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서울, 제주, 경기도 등 곳곳에 버려진 창고나 공장을 개조해서 카페로 만든 곳들이 여러군데 있다. 하지만 공통적인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소리다. 커다란 공간은 어쩔 수 없이 구조적으로 사람의 목소리나 음악 소리 등이 웅웅 거리면서 울리게 되어있다. 이러한 울림을 없애고 보다 정교하고 거리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들리도록 만드는 것이 사운드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콘서트홀은 소리의 반사를 시뮬레이션하여 음파의 반사 각도를 염두에 둔 설계를 한다. 그러나 일반 카페에서 그렇게 전문적인 설계를 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전문가를 통한 시공을 한다면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완벽에 가까운 작업이 아니라도 적어도 천고가 높고 큰 공간을 상업 공간으로 만든다면 소리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커다란 스피커로 음량만 높이기 보다는 음질이 좋은 작은 스피커 여러대를 분산 배치 하는 등의 방법으로 적어도 어느정도는 불편한 울림을 보완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은 큰 카페에 가면 우린 누구나 웅웅 거리거나 지글거리는 음악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게다가 그보다 더한 최악은 그러한 사운드 환경에서 음악 조차 너무 어울리지 않는 음악을 틀 때일 것이다. 어디선가 후원금을 충분히 받는 비영리 조직이 아니고 어차피 돈을 벌어야 하는 상업 공간이라면 최초 투자금이나 운영 비용등의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 들은 어쩌면 이곳을 찾는 많은 대중들에게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어떤 가게의 주인은 그렇기 때문에 발란스를 잘 맞춰야 한다. 일부 매니아나 전문가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지나친 투자를 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만든 컨셉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어느정도 선까지는 자신의 가치관이 무너지지는 않는 선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창고형 큰 카페가 사운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대안 중의 하나가 음악을 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그 장소가 도심이 아니라 한적한 시골길에 있는 거라면 음악을 끄고 있어보라고 권해보고 싶다. 바람소리, 새소리와 함께 실내에는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와 보다 조용해진 말소리만 부유하지 않을까. 그럴 때 그 공간이 더욱 빛나지 않을까. 귀가 피곤한 음악을 억지로 들려주는 것보다는 없는게 좋다.


동물? 아이?

어쩌면 이 부분은 가게의 문제라기 보다는 손님들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가게는 입구에 NO PETS INSIDE라고 써있다. 개나 고양이를 데리고 오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개와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으므로 나는 이러한 안내문이 전혀 불쾌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그보다 큰 문제는 아이다. 사람의 아기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가게에는 개나 고양이는 한마리도 없지만 꼬마들이 꺅꺅 소리를 지르면서 마구 뛰어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부모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이지만 내가 이 가게의 주인이라면 나라면 입구에 죄송하지만 몇 세 이하의 아이는 입장하실 수 없다고 적어놓을 것 같다. 대부분의 아이의 부모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그럼 아이를 혼자 집에두고 외출하냐고 반박한다. 난 그 문제에 대해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밖에 데리고 나온다면 그만큼 자기 아이를 통제하는 노력을 하든지 그게 안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에는 아이가 어느정도 클 때 까지는 데리고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개가 남의 집 앞에 볼일을 보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이의 엄마라면 자신의 아이가 카페 안을 놀이터처럼 떠들며 뛰어다닌다면 그런 아이를 사랑스럽게 쳐다볼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 해야 맞는 것 아닐까.


이제 이 글을 마무리 하고 난 이 공간을 떠날 것이다. 마침표를 찍으려고 보니 한 공간에 대한 감상을 이렇게 글로까지 남길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여기가 많은 사람에게 아주 심각한 피해를 주는 곳은 아닐텐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불편하다. 맛없는 커피를 마셨고, 시끄러워서 인상을 찌푸렸으며, 내 눈 앞에서 아이들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곳은 적어도 내게는 좋은 공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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